1894(甲午)년 학정(虐政)에 분개한 전봉준(全琫準)이 동학도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킨 후 그 위세가 날로 거세지고 있었다. 하지만 상제님께서는 앞으로 동학군들의 형세가 불리함을 아시고 여름 어느 날 월흑안비고 선우야둔도(月黑雁飛高 單于夜遁逃) 욕장경기축 대설만궁도(欲將輕騎逐 大雪滿弓刀)의 글을 외워주시며, 눈이 내릴 시기에 그들이 실패할 것을 예견하시고 동학군에 가담하는 것을 만류하셨다.
광구천하에 뜻을 두고 3년간 주유하시다
1895(乙未)년 봄, 두승산 시회에 참석하신 후 세상이 날로 혼란스러워짐을 보시고, 이때 비로소 광구천하(匡救天下)하실 뜻을 두셨다. 1897(丁酉)년 정남기의 집에 글방을 차려 서동들을 가르치시던 상제님께서는 유불선음양참위(儒佛仙陰陽讖緯)를 통독하신 후 이것이 천하를 광구함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시고 얼마 뒤 인심과 속정을 살피고자 주유의 길을 떠나셨다. 전북 김제를 떠나신 상제님께서는 충남 논산의 향적산에 은거하고 있던 김일부(金一夫, 1826~1898)를 만나셨다. 이때 김일부는 상제님께 ‘요운(曜雲)’이란 호(號)를 지어 드리며 지극히 공경하였다. 상제님께서는 경기ㆍ황해ㆍ평안ㆍ함경ㆍ경상 등 전국 각지를 두루 유력하시며 세상 사람들의 실상을 몸소 살피셨다. 전북 익산의 함열(咸悅)에 이르러서는 “만인 함열(萬人咸悅)”이라 말씀하시며 기뻐하셨다. 상제님께서는 3년간의 주유 끝에 고향인 객망리로 돌아오셨다.
천지대도를 여시다
1900(庚子)년 3년간의 주유를 마치고 객망리로 돌아오신 상제님께서는 시루산 정상에 올라 진법주(眞法呪)를 외우고 오방신장(五方神將)과 48장, 28장 공사를 보셨다.
시루산에서의 공사를 마치신 후 1901(辛丑)년 5월 16일 모악산 대원사(大院寺)에서 불음불식(不飮不息)의 공부를 시작하셨다. 공부하신 지 49일째 되던 날인 7월 5일, 동서남북의 사방과 하늘 위에서 다섯 마리의 용이 포효하듯 거친 바람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천지대도(天地大道)를 여셨다.
상제님께서 거처하시던 방에서
물이 들어있는 흰 병과 작은 칼이 발견되었는데
병마개로 쓰인 종이에
吉花開吉實 凶花開凶實의 글귀와
다음과 같은 글들이 씌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