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님께서는 21세 되시던 해 교육에 뜻을 두고
진대사립학교(충청북도 괴산군 장연면 광진리 소재)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하셨다.
이곳에서 2년간(1937~1938) 학생들을 가르치신 후
괴산군 유하리에 자리한 신흥서당으로 옮겨 교편(1939~1940)을 잡으셨다.
당시 중일전쟁(1937)을 일으킨 일제는
식민지 조선에 ‘국가총동원법’의 공포와 함께
우리말 교육을 금지하는 제3차 조선교육령(1938)을 시행하였다.
이에 따라 사립학교인 신흥서당이 폐교(1941)되자
도전님께서는 만주 봉천으로 떠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