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덕천하

4태극도를 영도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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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간 태극도를
    영도하시다


    도전님께서는 도주님께서 화천하신 후 10년간 태극도를 영도하셨다.
    도주님의 유명에 따라 시학ㆍ시법 공부와 법학ㆍ청학 공부를 시행하셨으며,
    종단의 공신력 향상과 혁신을 위해 태극도의 대내외적 체제를 정비하셨다.
    또한 구세제민의 창도 이념에 따라 교육사업과 의료사업 등 다양한 사회사업을 추진하셨다.
  • 공부 장소
    마련과 시행


    도전님께서는 시학ㆍ시법 공부를 시행하시며
    진양원, 백학관, 청학관 등을 건립하여 법학ㆍ청학 공부를 실시하셨다.




    법학(法學)은 청학을 준비하기 위한 수련이었고
    청학(靑學)은 태을주를 송독하여 개안을 시험하는 공부였다.
    도전님께서는 법학ㆍ청학 공부를 도수에 따라 한시적으로만 시행하셨다.
  • 종단 체제 정비와
    민생구제사업


    도전님께서는 1963(癸卯)년 태극도의 전반적인 체제를 정비하는 혁신을 단행하셨다.
    대외적으로 종단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태극도를 종교단체로 등록하고 재단법인을 설립하셨다.
    대내적으로는 『도헌』과 『규정』을 제정하여 새롭게 임원체계를 개편하셨고,
    『수도요람』ㆍ『수도규정』(1963), 『선도진경』(1965)을 간행하여 교리체계와 수도의 제반 규정을 마련하셨다.
    이와 함께 구세제민의 창도 이념에 따라 고등공민학교와 감천의원을 설립하는 등
    다양한 사회사업을 추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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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제님께서 짜놓으신
    도수에 따라 서울로 가시다


    “법(法)이란 것은 서울로부터 비롯하여
    만방(萬方)에 펼쳐 나가는 것이므로…”


    도전님께서는 도주님의 유명에 따라
    1958년부터 감천도장에 진양원, 백학관, 청학관을 건립하고
    1967년에 회관을 완공하셨다.
    그러자 도장의 형세가 마치 감천 앞바다로 출항하는
    배의 형상이 되었고 도장 주위의 축대는
    파도가 치는 모습이었다.
    1968(戊申)년 6월 24일 도전님께서는 상제님 화천치성을 마치신 후
    도주님의 진법을 새롭게 펼치기 위해 부산을 떠나 서울로 향하셨다.

    “서울도장의 창건은
    상제님의 수륙병진 도수(水陸竝進度數)에 의한 것이다.
    남대문에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을 써 붙였고,
    소원을 적은 종이에 안경을 싸서 북쪽으로 던졌으니
    곧 서울이다.”


    1906(丙午)년 3월 2일 상제님께서는 몇몇 종도들에게
    대전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라고 명하시고
    다른 종도들과 함께 군산항에서 배를 타고 서울로 가셨는데,
    이를 ‘수륙병진(水陸竝進)’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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