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명에 따른 공부로 대순진리를 여시다
  • 해원상생 대도로
    창도의 기반을 닦으시다


    1919(己未)년 정월 보름에 봉서를 받으신 도주님께서는 1925(乙丑)년 무극도 창도 이전까지 상제님께서 짜놓으신 도수를 풀어나가며 쉼 없는 공부를 이어가셨다. 이때의 공부로는 통사동 재실에서 1919년부터 시작하신 공부를 비롯하여 둔궤를 모시고 행하신 공부(1919~1920), 대원사 백일 도수(1921), 상제님의 성골을 모시고 행하신 공부(1921~1922), 둔 도수ㆍ단 도수ㆍ폐백 도수로 이어진 공부(1923~1924)가 있다. 또한, 1923(癸亥)년에는 교단 조직을 준비하고 「전교(傳敎)」를 내려 무극도의 창도를 예시해 놓으셨으며, 대순진리의 종교적 법리가 뿌리내릴 창도의 기반을 닦아 나가셨다.
  • 둔궤를 모시고 공부하시다

    도주님께서는 1919(己未)년 통사동 재실에서 공부를 하시던 중 선돌부인으로부터 둔궤가 ‘천지도수의 조화둔궤’라는 말을 전해 들으셨다. 둔궤는 상제님께서 동곡 약방을 여실 때 약장과 함께 공사에 쓰시고 약방에 비치하여 두었던 궤이다.

    이해 9월 4일 도주님께서는 둔궤를 찾아 통사동 재실에 모시고 밤낮으로 불면불식(不眠不息)의 공부를 하셨다.
  • 둔궤의 공사 내용이 전해지다
    도주님께서 통사동 재실에서 불면불식으로 공부하시던 중 1920(庚申)년 2월 17일 둔궤가 봉안된 곳에서 벼락 소리가 나더니 둔궤가 저절로 열렸다. 둔궤 안에는 호피 한 장이 있었고, 반쯤 핀 국화 한 송이가 그려져 있었으며, 양羊의 피로 찍은 24개의 점이 있었다. 그리고 오강록(烏江錄)ㆍ팔문둔갑(八門遁甲)ㆍ설문(舌門)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도주님께서 둔궤를 함안 반구정으로 옮겨 이곳에서 공부를 마치시고 나서 그 둔궤가 사라졌다. 종도들이 이것을 몹시 안타까워하자 도주님께서는 “그 시기의 도수에 쓰였으면 족하니라. 둔궤의 둔 자는 도망 둔(遁) 자이도다.”라고 말씀하셨다.

    둔궤(遁櫃)
    둔궤는 상제님께서 1908년 동곡 약방을 차리실 때 만들어 비치해 놓으신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궤 안에 ‘팔문둔갑(八門遁甲)’이라 글을 쓰고 그 위에 ‘설문(舌門)’ 두 글자를 낙인하신 후 그 글자 주위에 24점을 홍색으로 찍어 약방에 비치해 놓으셨다. 이 둔궤는 1919년 도주님께 전해져 공부에 쓰여진 후 사라졌다가 1984년 도전님에 의해 회수되어 ‘성궤(聖櫃)’라 명명되었다.
  • 굴바위에서 설법하시다

    도주님께서는 부안 변산(扶安邊山) 굴바위에서 공부를 행하시며 마을 사람들에게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설법하셨다. 이에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2백이 넘었다.
  • 대원사에서 공부하시다

    “이곳이 바로 상제께서 천지신명을 심판한 곳이니라. 아직 응기하여 있는 것을 내가 풀었노라.”
  • 상제님의 성골을 모시고
    공부하시다


    1921년(辛酉) 9월 5일, 권태로 외 네 사람이 도주님의 분부를 받고 구릿골에서 통사동 재실로 상제님의 성골을 모시고 왔다. 그 후 매일 밤낮으로 치성을 올리고 공부하신 도주님께서는 상제님께서 강세하신 날 치성을 올리시고 “시시묵송 공산리 야야한청 잠실중 분명조화 성공일 요순우왕 일체동 (時時黙誦空山裡 夜夜閑聽潛室中 分明造化成功日 堯舜禹王一切同)”이라 말씀하셨다.
  • 「전교傳敎」를 내리시다

    도주님께서는 1923(癸亥)년 6월 23일 “금년이 이재신원(利在新元) 계해년이라.” 말씀하시고 「전교」를 내리셨다.

    「전교」는 역사 속에 성쇠했던 성군과 성인의 도를 통해 천지도수의 흐름을 밝혀주신 것으로 새로운 도가 세상에 나와 창생들을 구제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도주님께서는 주선원과 주선원보 등의 직책을 마련하여 대도를 널리 전하는 임무를 담당할 조직을 준비하셨다.
  • 무극도 창도를 준비하며
    공부하시다


    도주님께서는 1923년 계해년을 ‘이재신원’이라 밝히시며 무극대운의 해원상생 대도를 펼치기 위해 무극도의 창도를 준비하셨다. 그 시기는 1923년 1월부터 1924년 10월까지이며, 이때 도주님께서는 도수에 따라 쉼 없이 공부하시며 창도를 위한 역사적인 행보를 남기셨다.

    이 시기에 둔 도수, 단 도수, 폐백 도수 등의 공부를 하셨다.

    둔 도수
    밀양 종남산 세천동의 김병문 종도의 집
    1923년 1월~3월, 1924년 2월~3월

    도주님께서 둔 도수를 행하실 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많은 종이에 글을 쓰셨는데, 공부를 마치고 태인도장에서 치성을 모신 후 그 종이들을 불사르셨다.

    단 도수
    도주님께서는 두 차례에 걸쳐 단 도수를 행하셨다.

    청도 유천 박동락의 집
    1923년 6월~9월

    진인보두법(眞人步斗法)으로 단 도수를 행하셨다. 진인보두법은 북두칠성에 별자리 두 개를 더한 북두구성을 땅 위에 그리고 그 아홉 개의 별자리를 차례로 밟아 나가며 행하는 수행법이다.

    청도 적천사 도솔암
    1923년 10월~1924년 2월

    돌단을 높이 쌓아 24방위를 정하고 천지신명을 응기케 하신 공부이다.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넉 달 동안 계속되었다.

    폐백 도수
    밀양 종남산 영성정에서 시작하여 함안 반구정에서 마치신 공부
    1924년 5월~10월

    1924년 4월에 태인도장에서 치성을 모신 후 행하신 공부이다. 도주님께서는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다섯 달 동안 행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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